05. 저래 큰 걸 심었나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밀양’ 프로젝트 기간에 순출 할머니 앞마당에서 녹음함


이 노래는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밀양’(이하 미행)1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만들게 된 노래이다. 미행에서 밀양을 찾았을 때는 이미 한전에서 송전탑을 세워 버리고 나서였다. 하지만 밀양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그리고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계기로 시작된 송전탑과 핵발전소에 맞선 싸움을 여전히 이어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우울해 하거나 무력감에 빠지지 않으면서 밀양 주민들의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 귀담아듣고 내가 이해한 선에서 그 이야기를 정리해 노래로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송전탑 싸움 때문에 밀양에 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 전부터 밀양에서 들려오는 소식엔 계속 신경이 쓰였다. 솔직히 내가 송전탑이나 탈핵 문제에 대해 크게 민감해서 그랬던 건 아니었고, 그냥 그 싸움의 소식이 다른 것들보다 더 내 마음을 움직였는데, 단순하게는 밀양의 할머니들을 보면서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서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 그 전부터 나는 공룡에서 연대하고 있는 투쟁 현장에 종종 갔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그곳에서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의 슬픔이나 기쁨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기 때문에 주눅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러던 중에 밀양 송전탑 투쟁에 대한 영상을 보았고, 그럴듯한 명분 때문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이 이렇게 많이 움직인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았기 때문에, 밀양에 있는 미디어활동가들이 촬영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다고 했을 때 촬영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지만 무작정 가서 한 일주일 정도를 있었던 것 같다. 가서는, 촬영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지만 무작정 촬영을 했기 때문에 큰 도움은 안 되고 자꾸 남의 발에 채며 없어도 되었을 불편을 얹어드렸던 것 같다. 밀양의 할머니들은 전반적으로 상대를 가려 경계하지 않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말씀을 정말 많이 하시며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도 나는 계속 쭈뼛대면서 사소한 것 하나를 가지고도 이렇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하면 안 될까 고민을 하면서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결국, 거의 일주일 동안 주로 나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하며 허우적대다가 왔다. 이게 좋은 마음가짐은 아닐 텐데, 시간이 갈수록 좀 더 나아지긴 하지만 사람이 쉽사리 바뀌진 않는 것 같다.

절실한 투쟁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질투가 날 정도로 위대한 사람들로 보였다. 나는 상상도 잘 안 되는 고통을 버텨 가면서, 오히려 거기 돕겠다고 찾아간 내게 먼저 손을 내밀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반짝거리는 사람들 틈에 끼지 못하는 걸 서운해하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계속 그렇게 서운해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좀 더 연대활동을 열심히 해서 어느 현장에서도 의지가 되는 훌륭한 연대 활동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이건 안될 것 같은데, 모르는 것으로 하겠다). 그런데 내가 뭐가 되든 그건 일단 내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생각은 든다. 내가 이런 게 답답하다면, 그냥 앞으로 어느 현장에 어떻게 연대하느냐에 상관없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 삶을 좀 더 단단하게 살면 될 일이다. 왜 거기에서 혹시라도 내가 나쁜 놈 될까 봐 조급해하는 걸까. 안 그래도 가뜩이나 힘든 사람들에게 내 찌질한 혼란스러움을 투영하면서 나 혼자서 그 사람들을 내 인생 시나리오 안에 이렇게 저렇게 배치하는 것은 좀 실례 아닌가. 그래서 요즘도 투쟁 현장에 가면 복잡다단하지만 다른 사람들이랑은 동떨어진 감정이 올라오곤 하는데, 그냥 잘 잠재우고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땅 놔두면 여기다 모도 심고
고추랑 파도 심어서
나 먹을 거 먹고 나눠주고
나중에 땅도 물려줄 수 있는데

감 판 것만 해도
달에 백만 원짜리 벌이는 되고
자식들한테 달라 소리 안하고 먹고 살 텐데

지 혼자 먹을 게
고작 해봤자 얼마나 된다고
남의 땅에다 경찰이다 뭐다 다 달라붙어서는
강제로 허락도 안 받고

뭐 저래 큰 걸 심었나
저거 온통 쇳덩이라 먹지도 못하고
저런 걸 심었나
뭘 먹을라고

지건 지 자식들이건
혼자서만 살 게 아닌데
한 개 심겨 있으면
풀도 나무도 사람도 온통 잡아먹는 걸

이득은 지가 보면서
여기엔 코빼기도 안 비치고선
애먼 사람들끼리 서로 밀고 밀치고 울부짖게 만드는 저 괴물 같은 걸

뭐 저래 깊이 박았나
뒷감당할 사람은 생각도 않고서
저렇게 박았나
뽑기 힘들도록

저래 큰 걸 심었나
저래 깊이 박았나
뭐 저래 큰 걸 심었나
저래 깊이 박았나

물려줘 봤자 짐만 되는 걸 저래 큰 걸 심었나
애먼 사람만 죽어나도록 저래 깊이 박았나


  1.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OO’는, 미디어 활동가/제작자들이 서로 교류하며 현장과 긴밀하게 결합해 힘을 주고 받기 위해 때마다 하나의 현장을 정해 그곳에서 4박 5일 정도의 시간 동안 영상, 소리, 잡지 등의 공동제작을 하는 프로젝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