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좋겠어

멜로디와 가사를 완성한 후 녹음했던 데모


이 노래는 아는 분의 결혼식 축가로 만들어진 노래이다. 내 결혼식 때도 노래 안 만들었는데. 혹시 그때도 누가 만들라고 시켰으면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도 안 시켰다. 하여튼 이 분은 공룡의 멤버들과 이래저래 인연이 깊은 사람이고, 나도 공룡에 오기 전부터 잘 알고 지냈었다. 같이 결혼하실 분은 둘이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 뵈었고, 그 이후로 종종 공룡에 같이 놀러 오시면서 조금씩 안면을 트게 되었던 것 같다. 남이 결혼한다는데 옆에서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얘기하는 거 다 쓸데없는 오지랖이겠지만, 둘이 결혼한단 얘기를 들었을 때 이 두 사람은 결혼하면 좋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막연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표현하긴 힘들지만, 그냥 둘이 결혼한다는 얘기가 뜬구름 잡는 것 같지 않고 되게 현실적으로 느껴졌달까. 그래서 다행히도 결혼을 축하하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없었더라면 이 정도까지 정성 들여서 곡을 만들진 않았을 것 같다. 아마 결국 못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은 여행을 갔다가 그곳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노래를 만들기 시작할 때 가사 쓰기를 위해서 이분들을 잠시 만나서 둘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결혼을 결정하게 되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내용을 녹음한 파일을 듣고 인상 깊은 내용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 나가면서, 되게 건강한 사람들이란 인상을 받았다. 우선, 물론 나보다 경험(나이)도 훨씬 많고 단단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서 당연하겠지만, 결혼이나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 부담스러운 환상을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결혼을 앞둔 이 사람들은, 결혼보단 앞으로의 삶 자체에 대해 꿈꾸고 있었다. 꿈이란 게 원래 좀 허황된 거겠지만, 뭐에 대해서 꿈을 꾸느냐는 중요한 것 같다. 굳이 결혼뿐 아니라, 누군가가 어떤 한 가지 사건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저건 그닥 진심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나의 경우는 결혼한 지 5년 정도가 되어 가는데, 결혼해서 뭐가 좋으냐고 묻는다면 당장 준비된 대답이 튀어나오진 못한다. 그냥 좀 덜 외로운 거? 서로 중요한 게 많아서 살고 싶은 대로 살려면 피곤한 일도 많겠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힘이 되면 됐지 짐이 되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 같다는 거? 사실 그게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살면서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냥 내가 아닌 사람이 계속 내 옆에 있어도 괜찮은 거. (물론 이건 결혼생활에 대한 내 입장에서의 해석이다. 나 말고 다른 이의 생각은 좀 다를 수도 있지만, 앞으로 집안 많이 안 어지르고 청소 열심히 하고 설거지도 되도록 바로바로 하고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곧 신혼부부가 될 사람들에게서 결혼 10년 차와 같은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과 그 소중함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훨씬 더 거짓말로 느껴지지 않고 좋아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두 사람의 앞으로의 삶을 응원하고 싶은데, 내가 굳이 응원 안 해도 둘은 잘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음반에 실린 노래 중 많은 곡이 대단한 실력이나 연습 없이도 다양한 사람들이 편하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웬만한 기타 초급자도 어렵지 않게 칠 수 있는 코드를 사용하였다. 둘째손가락을 펴서 짚어야 하는 코드는 F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든지, 기타를 못 치는 나도 3초 안에 짚을 수 있는 코드여야 한다든지, 그런 기준으로 만들었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어차피 반주를 만들어서 틀어놓고 결혼식 때 한 번 부를 생각으로 만든 거라, 좀 더 정성을 들여서 가장 많은 종류의 코드를 사용해서 만들었다. 원래 예전부터 예측하기 힘든 코드 진행을 가진 노래들에서 매력을 많이 느끼고 한창 피아노 연습할 때는 이런저런 코드 진행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도 했었는데, 한동안 으뜸화음 딸림화음 버금딸림화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곡들을 만들다 보니 한 편으론 감을 잃었을까 봐, 다른 한 편으로는 혼자 욕심에 너무 오버할까봐 걱정이 좀 됐었다. 결과적으로는 뜬금없지 않은 적절한 노래를 만든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투박한 나의 삶에서 그나마 괜찮았던 날들
흔들리던 오토바이 위로 흐르던 파란 하늘
적당히 심심하고 뭘 해도 즐거웠던 날들
그리고 기대하지 못한 채 마주친 좋은 사람

시간이 흐르고 우리가 또 우릴 둘러싼 모든 것들이 변해가겠지만
그때 우리가 보았던 서로의 모습을 잊을 리는 없지 않겠니

물론 산다는 게 그렇게 늘 한결같지는 않아
뭐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겠지
그래도 생각지도 못한 어떤 순간에 서로를 보고 있으면
거짓말처럼 아무렇지도 않았음 좋겠어

별다른 뜻은 없는 듯 둘이서 가자던 여행
나도 좋아한다며 반가워하며 듣던 노래
잠시 쉬려고 앉았던 특별할 것 없던 그 벤치
그곳에서 기척도 없이 건넨 쪽지

우린 참 많이 닮았어 그래서 안 좋은 점까지 많이 닮은 게 문제긴 하지만
서로 좋지만은 않은 때라도 서로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니

물론 산다는 게 그렇게 늘 쉽게 가지는 않아
오르막은 숨차고 골짜기는 깊겠지
그래도 생각지도 못한 어떤 순간에 모든 걸 놓아두고서
너와 둘이서 또 한 번 여행을 떠났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