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집 열쇠

아마도 2010년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개소식 다음날 오전에 녹음함


‘집 열쇠’는 이 음반에 실린 곡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노래이다. 그리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써냈던 노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계기는 있었지만) 이 음반에 실린 대부분의 곡과 다르게 외부의 요청과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만들었던 노래이기도 하다. 이렇게 누가 시키지도 않은 내 얘기를 망설임 없이 할 힘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던 시기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요즘의 나는 하고 싶은 내 얘기가 생겼을 때 그 얘기를 꺼내놓기 전에 주변을 의식하고, 이게 과연 맞는지, 중요한지, 특별한지 이리저리 따지고 재보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른 걱정되는 일들과 별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재밌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서 금방 또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살면서 다른 이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주체적으로 뭔가를 선택했던 때를 꼽으라면 두세 가지 정도가 떠오르는데, 어이없게도 그것들이 다 뭔가를 그만두었던 순간이었다. 2008년 초에 나는 대학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었고 3월이 되면 대학원에 입학할 예정이었는데, 등록금 납부 마감 전날에 그만두기로 결정을 하고 오밤중에 교수 및 연구실 선배들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었다. 그 이후에 평소에 어렴풋이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일들을 할 방법을 찾다가, 어떻게 어떻게 미디어 운동이란 걸 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렇게 운동이란 것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길지 않은 시기에 나는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내어놓았다. 당시의 나를 알던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단 얘기다. 나는 그 정도면 많이 내어놓은 거지 싶다. 여튼 왜 그랬나 생각해 보면 그게 뭐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거나 오만해서 그랬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 일단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더더욱) 뭐가 뭔질 너무 몰라서 내가 하는 말이 얼마나 무식하거나 유치한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배경지식이 많이 없었던 게 있고, 그 전까지 내가 꿈꾸는 것에 대해서 남에게 많이 얘기해 본 적이 별로 없으므로 주변 눈치를 살필 겨를없이 많이 흥분하고 신나서 그랬던 것도 있다. 당시의 나를 알던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단 얘기다. 나는 그 정도면 많이 흥분하고 신났던 거였다. 그래서 나는 ‘몇몇 전문가만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모든 사람은 실력에 상관없이, 평가의 부담에서 벗어나서 노래를 짓고 부르고 즐길 수 있어야 해!’ 뭐 이런 생각을 별다른 고려 없이 열정적으로 입 밖에 내어놓을 수 있었고, 다행히 그 말에 동의해 준 (그리고 입으로만 안 떠들고 몸을 움직이는 법을 알았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마실음악회’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한강 등지로 기타와 멜로디언, 악보 등을 챙겨가서 노래를 부르고 놀았었다. 그리고 그 모임에서 남의 노래만 부르지 말고 슬슬 노래를 직접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언젠가 노래를 하나 만들어 오겠노라고 이야기를 해 놓은 상태였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경기도 양주의 아파트였다. 제대로 살림이 되려면 아파트에 사는 것이 좋다는 어머니의 권유를 따라(사실 내가 알기로 엄마도 아파트에 살아본 적은 없었지만), 서울에서 원룸 전세를 얻을 돈으로 아파트를 얻을 수 있는 (그리고 대중교통으로 서울에 다닐 수 있는) 곳을 알아본 끝에 찾아낸 곳이 거기였다. 양주의 그 아파트에서 서울의 웬만한 곳에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두 시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만약 서울에서 집에 가는 시간이 늦어져서 우리 아파트가 있는 덕정역까지 가는 지하철이 끊겨 버렸을 땐 파란색 광역버스를 이용해야 했는데, 그렇게 되면 집에 가는 데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정도가 걸렸고, 그중 두 시간 가량은 버스 안에서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다. 위에서 말한 마실음악회에서 노래를 만들자고 얘기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은데, 그날도 서울에서 출발이 늦어지는 바람에 파란 버스를 타고 의자에 앉아서 격렬하게 졸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갑자기 나의 소중했던 아파트 키가 주머니에서 흘러 나올까 봐 많이 걱정이 되어서 이런저런 조치를 취하다가 다시 졸다가 했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 상황이 조금 인상적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꿈꾸는 것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던 당시의 나 자신을 꽤 좋아했던 것 같고, 물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사실 내가 내 입으로 떠드는 것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새에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조금이라도 내 약점이 드러나 버리면 많이 당황하고 부끄러워했고, 별다른 의도가 없는 상대방을 향해 과도한 방어를 하고, 과도하게 방어하려다 보니 공격적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하여간 그때 그 버스 안에서, 나는 이런 내 모습을 퍼뜩 깨달아 버렸던 것 같다. 당시엔 위에 쓴 것 같은 말로 이 깨달음을 정리해서 설명하진 않았다. 잠이 어느 정도 깨버리고 나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남은 시간 동안에, 조금 전까지 아파트 키를 부여잡고 있던 내 모습을 곱씹으며 떠오른 생각들을 문장으로 다듬어 나갔고, 집에 도착해서는 책상에 앉아서 빠르게 가사를 써 내려 갔다. 나 자신에 대한 짜증과 비웃음을 가득 담아서.


나는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서
뒷바퀴 윗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둔 우리 집 열쇠를
행여나 졸다가 흘리고 그냥 갈까 봐

옆 사람 어깨를 피해서 몸을 뒤틀어
내 왼손을 왼쪽 주머니에 깊이

찔러 넣다가 다시 생각을 해보니
마냥 이러고 집까지 갈 수는 없잖아
그래서 주머니에 있던 열쇠를 꺼내서
가방 앞에다 넣고 자크를 잠갔어

그래도 내가 자는데 누가 훔쳐가면 어쩌나
차라리 입에다 넣고 삼켜 버릴까

그렇게 인간성 버려 가면서 아등바등 돈을 벌어야겠냐고
그렇게 해서 집 사느니 차라리 길가에 나앉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나는 엄마가 얻어준 전셋집에서
아빠가 사준 침대에 누워서
우리 이모가 보내준 극세사 이불을 덮고
이 냉혹한 세상의 질서를 뒤엎는 투쟁을 하는 꿈을 꾸었다
이러니 뭐가 되나

엄마 돈으로 전세, 투쟁
아빠 돈으로 침대, 투쟁
극세사 이불은 감사했어요, 이모
왼쪽 주머니 왼손,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