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이렇게나 남았어

가가호호 캠프 마지막 날에 만들었던 음원에 술래가 랩을 얹어준 것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에 오기 전부터 음악을 이용한 교육 프로그램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공룡에 와서 많이는 아니어도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2박 3일짜리 단기 음악 교육을 기획해 볼 기회가 있었다. 이 노래는 그중에서 아르떼에서 주최한 ‘가가호호’라는 캠프에서 만들었던 노래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참여자들이 ‘소소한 자랑거리’를 주제로 한 짧은 가사와 다장조의 멜로디를 만들어서 그걸 돌림노래처럼 함께 부르는 것이었는데, 남에게 대놓고 보여줄 그럴듯한 노래는 아니었고 좀 남부끄럽기도 했지만 남 시선 신경 쓰지 않고 같이 열심히 불렀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캠프가 끝나던 날에, 우리가 부른 노래를 녹음한 소리를 이용해 이 노래를 만들어서 참가자들에게 선물했었다. 그리고 같은 캠프에 교육자로 참여한 술래 님이 완성된 노래 위에 랩을 얹어 주시기도 했다. 이 노래엔 그때 참여했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연주가 샘플링되어 있어서, 음반에 싣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캠프 참가자들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해야 할 테지만, 이 캠프가 꽤 예전에 진행되었던 거라 아쉽게도 참가자들의 연락처를 알기가 힘들다. 그래서 (아마 힘들겠지만) 이 음반이 그분들에게까지 가서 닿게 되어서 어떻게 연락이 닿는다면, 어떻게든 감사 말씀을 드리고 작은 선물이라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이후에 한동안 교육을 하지 않다가, 올해 초에 지역아동센터, 탈학교 시설 등에 있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기획해 갔던 것은 전과 같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남부끄럽고 괴상한 음악을 만들어 내는, 하지만 적어도 어디서 들어본 것들을 어설프게 흉내 내고 뭐라도 된 양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에 들어가는 요소들을 최대한 직접 선택하게 하고, 그래도 괜찮다고 용기를 주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이 캠프에서는 여러 가지로 상황이 여의치 않기도 했고, 참가자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이미 크고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것에 대한 저항도 심했기 때문에 결국 캠프 중간에 참가자들과 이야기해서 프로그램 내용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캠프 진행 중에 교육 프로그램과는 별개로 참여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 캠프 전체를 운영하시는 선생님과 프로그램 진행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그중 한 참여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또래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했던 이야기, 또래들보다 성적이 좋지 않고 배우는 게 더뎌서 다양한 활동을 하게 하며 용기를 주고 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다 마무리될 무렵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는데, 정확한 표현이나 단어는 기억나진 않지만, 이 정도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아이는 계속 잘한다고 해 주고 용기를 북돋워 줘야 해요. 현실을 깨닫게 해 주는 게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듣고 살짝 정신이 멍해졌던 것 같다. 그때는 그렇게 대화를 끝냈지만, 나는 저 말이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분의 의도와 생각에 정말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분에겐 내가 하는 교육이 뭔가 아이들에게 모르고 살아도 될 비루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거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때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어쨌든 계속 칭찬을 해야 그 아이가 힘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선생님이 나보다 그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내가 그 친구에게 이런 게 필요하다고 강하게 얘기할 자격은 안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하려는 교육이 힘들게 사는 아이들에게 괜한 소릴 해서 용기를 빼앗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되는 건 기분이 좀 나빴다. 무엇보다, 나는 오히려 교육하면서 칭찬을 되게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참여자들에게 좀 부끄럽더라도 누굴 흉내 내지 않고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것은, 그 사람들의 못난 모습을 끌어내서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못나지 않았다고 진심으로 믿고, 그래서 더 드러내도 괜찮다고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한 차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쌓인다면, 평소와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을 때만 해주는 간헐적인 칭찬보다는 삶에서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거라고 믿고 있다.


안전한 유리창 뒤에 몸을 숨기고
(창밖에 비 오네 하늘이 물을 비우네)
세상에 그게 대체 뭐냐고 웃지만
(다 쉽게 뭐래도 또 아쉽게 말해도)

지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서
(우산이 없다 우네 우린 씩 하고 웃네)
그렇게 해서 어쩌느냐고 묻지만
(어쩌긴 뭘 어째 비 맞지 비 내려주니)

내가 부른 노랠 듣고
도대체 안 되겠단 듯이 고갤 흔든다 해도
우린 자랑할 만한 게 이렇게나 남았어

(흙투성이 밖에 노는데 비 내린다 비)
(다 씻게 놔둬 비에 더 쉽게 씻게)
(열나게 놀다 식게 그냥 둬 열 식게)
(어쩌긴 뭘 어째 비 맞지 비 내려주니)

안전한 유리창 뒤에 몸을 숨기고
(우리 발자국 남겨진 창밖엔 비가 그쳤네)
세상에 그게 대체 뭐냐고 웃지만
(해 뜨니 옷 말리네 우린 아무도 못 말리네)

지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서
(우리 발자국 남겨진 노래엔 너와 나 있네)
그렇게 해서 어쩌느냐고 묻지만
(어쩌긴 뭘 어째 부르지 우리 이 노래)

내가 추는 춤을 보고
저게 뭐하는 거냐며 거들먹거려 봤자
우린 자랑할 만한 게 이렇게나 남았어

이것 봐
이것 좀 봐
이렇게 많이 남았어

이것 봐
우와
이렇게나 남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