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원래 네 것이 아니야

수정 작업 후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의 캠페인송으로 최종 확정된 버전


이 노래는 현 사회변혁노동자당(그 당시엔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1에서 나에게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던 노래이다. 이곳에서는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운동’이란 것을 막 전개하고 있었는데, 그 운동에 쓰일 캠페인 송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한 번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지만 정확히는 뭔지 몰랐던 사내유보금이라는, 얼핏 보기에도 메마르고 건조해 보이는 것에 대해서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좀 무리한 도전인 것 같긴 했지만, 의무감이나 부채감을 넘어서 한번 해 보고 싶기도 했다. 정말 절실하고 목숨이 걸린 문제들에 대해서 아무리 열심히 호소하고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을 해도, 많은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 짐짓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체 이런저런 논평을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혹은 가져야 한다고 믿었던) 믿음이 깨지는 게 무서워서 그저 고집을 피우는 듯한 모습을 볼 때마다 무기력해지곤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몇 곡의 노래를 만들면서, 내가 만드는 노래를 통해 그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공감하고 마음을 돌리게 하는 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번 사내유보금 노래 만들기를 통해서 이러한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공룡에서는 지역의 여러 노동 현장에서 고초를 겪는 사람들에게 계속 연대를 해 왔는데, 여기에 대해 음악을 가지고 뭘 해 본 적이 많이 없는 것 같아서, 언젠가는 노동이란 것에 대한 노래 만들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평소에 하던 대로 사내유보금 환수에 대한 주어진 자료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심정을 공감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리고 너무 전형적이어서 사람들이 더는 그 말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을 최대한 피해 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노래의 초안을 의뢰하신 분에게 처음 들려 드렸을 때, 조심스럽고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하지만 무척 광범위한 수정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당장 시간이 없는 상태에서 노래를 거의 갈아엎어야 할 지경이 되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망연자실했지만, 어떻게 어떻게 무사히 작업을 마무리한 후에는 내가 되게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사실 투쟁 현장에서 흔히 듣는 ‘운동가요’란 것에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다. 편견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연대 활동을 위해 집회나 문화제에 갔을 때 앞에서 음악가들이 불러 주는, 때로는 힘차게 투쟁을 독려하고 때로는 절실한 심정을 토해내는 노래들을 들으면서, 그리고 거기에 감동하고 마음을 모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도저히 거기에 끼질 못할 것 같아서 혼자 어이없이 외로워하고 그랬다. 그래서 내가 그런 걸 왜 안 좋아하는지 막 논리적 근거를 들어서 설명하면서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획득해 보려고도 했으나, 뭐 그 근거가 맞든 틀리든 간에 그냥 애초에 안 좋아하는 건 안 좋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음악의 경우엔 어떤 음악이 되었든 누가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이의 삶이 흔들리거나 고립된다거나 하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아서, 나는 앞으로도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계속 운동가요를 안 좋아해도 될 것 같으며, 나의 선호와 관계없이 운동가요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투쟁 현장에서 필요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의 경우엔 의뢰를 받아서 운동을 위한 캠페인 송을 만든 거였고, 내가 그 운동을 지지하고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노래 만드는 걸 제외하곤 뭘 같이 많이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최대한 그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노래를 만드는 게 맞았다. 내가 자주 그러긴 해서 조심하려고 노력하는데, 또 한 번 나한테 소중한 것에 대해서만 잔뜩 마음을 쏟느라 좀 거만해졌던 것 같다.

그래도, 운동가요가 안 좋아서가 아니라, 나는 내가 만든 수정되기 이전의 ‘원래 네 것이 아니야’가 흠이 좀 있더라도 필요한 노래이며, 앞으로 계속 이런 식의 노래를 만들어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 보라고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음반엔 수정되기 이전의 버전을 싣기로 했다. 또 이것과는 별개로, 조금 전까지 운동가요를 안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정된 노래도 꽤 마음에 든다. 수정 요청을 받은 후에, 곡을 의뢰하신 분과 두 번에 걸쳐서 이야기를 나누며 단어 하나하나를 뜯어 가며 결국 원래 만들어졌던 노래의 반 이상을 고쳤고, 그리고 나서는 다양한 운동가요들을 참고해 가며 그럴듯한 운동가요 사운드를 만들어 보려고 많이 노력했으며, 그 결과 제한된 시간과 조건에 비해서는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던 것 같다. 이럴 때 느끼는 (좋은 의미에서의) 업자로서의 뿌듯함 같은 게 있다.


크고 화려하진 않더라도 힘들게 일하고 살다 보면
내 손에 꼭 쥘 수 있는 작은 열매가 맺힐 거라 믿었는데
지금 나의 손에 남은 것은 가느다란 한 줌 모래뿐이야
아무리 힘을 다해 움켜쥐어봐도 힘없이 흘러나가고 마는

삶이 원래 그런 거라고
네가 우리 모두를 살릴 거라고 말하던
너의 손엔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있고

이건 원래 내 것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너의 얼굴에 내 얼굴을 맞대고 나는 소리쳤지

우리의 것을 돌려줘
네가 만든 적 없는 그것을 돌려줘
우리가 흘린 땀과 눈물을 넌 본 적도 없어

그 땀과 눈물이 빛나는 보석이 되어 네 손에 들려 있어
그걸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원래 네 것이 아니야

나는 저들과는 다르다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쓰러진 친구들을 애써 외면하며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지만

쟤는 원래 저랬었다고
저게 우리 모두를 죽일 거라고 말하던
너의 손엔 피 묻은 칼자루가 들려있고

더는 믿지 못하겠다고
애초부터 믿은 적이 없었어
우린 서로의 상처 난 손을 꽉 쥐고 크게 소리쳤지

우리의 것을 돌려줘
우리가 옳다고 믿는 삶을 돌려줘
네가 말했던 꿈과 미래는 이 세상엔 없어

네가 만든 건 오갈 데 없는 분노와 절망뿐이야
그런 세상을 기뻐할 사람은 너희 말곤 없어

우리의 것을 돌려줘
네가 만든 적 없는 그것을 돌려줘
우리가 흘린 땀과 눈물은 원래 네 것이 아니야


  1. 사회변혁노동자당은 노동자 계급정치 실현과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내걸고 2016년 1월에 출범한 정당이다.